미국 사람들이 축구보다 미국 풋볼에 더 열광하는 이유
10월 어느 금요일 저녁, 텍사스의 작은 마을. 인구 5,000명 남짓한 동네인데, 고등학교 풋볼 경기장 주차장은 차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림잡아 8,000명. “이 마을 사람 다 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스탠드 위로 가을 밤바람이 불고, 이 고등학교의 밴드부가 행진하면서 학교 응원가를 연주합니다. 핫도그 굽는 냄새, 팝콘 냄새, 그리고 헬멧이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 50년 전 이 학교에서 쿼터백을 했다는 백발의 할아버지가 손주의 등번호를 가리키며 옆 사람에게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날,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 풋볼이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한국에서 자란 우리에게 당연“공놀이”는 축구입니다. 2002년 월드컵의 그 뜨거운 함성, 광장의 빨간 물결, “대~한~민~국”이라는 네 음절의 또렷한 박자. 미국에 처음 와서 가장 의아했던 것 중 하나는 — 그 200개국이 함께 열광하는 축구를, 미국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자리를 미국 풋볼이라는, 우리에게는 낯선 종목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 글은 미국 풋볼의 규칙을 설명하려는 목적으로 쓴 글이 아닙니다. 다만 35년을 미국땅에 살면서, “왜 이 사람들은 그토록 풋볼에 진심인가”에 대한 궁금증을 품어왔던 한 이민자가 미국 풋볼을 대하는 미국인들을 지금까지 바라보면서 나름대로 해석한 이야기를 적어보려는 것입니다.
세계가 만든 축구, 미국이 만든 풋볼
축구는 세계의 종목입니다. 영국에서 시작해 200개국으로 퍼졌고, 월드컵은 인류가 가장 많이 함께 시청하는 스포츠 행사 중 하나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그 흐름에 합류하지 않았습니다. 19세기 후반, 영국의 럭비를 가져와서 자기들 식으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예일대학교의 월터 캠프(Walter Camp)라는 사람이 1880년대에 다운(down) 시스템과 라인 오브 스크리미지(line of scrimmage)를 만들었고, 그 후 50년 동안 미국 대학들이 이 종목을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축구가 “세계가 함께 즐기는 게임”이라면, 미국 풋볼은 “미국이 자기들 스스로 만든 게임”입니다. 그런데 그 차이가 의외로 큽니다. 미국 사람들에게 풋볼은 — 야구와 함께 “우리가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깔려 있는 종목입니다. 재즈가 미국의 음악이고, 햄버거가 미국의 음식이듯, 풋볼 역시 미국의 대표적인 스포츠 종목입니다. 외부에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미국 내에서 키워낸 스포츠인 것입니다.
세계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축구를 미국만이 외면하는 것은, 단순히 취향의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 사람들은 풋볼을 단지 취향을 넘어서 자기 나라의 대표적 종목이라는 자긍심 같은 것을 내면안에 가지고 있습니다.
어김없이 가을이 오면, 어김없이 바뀌는 미국 동네의 분위기
한국에서 가을은 단풍과 추석, 그리고 낭만이 깃든 계절로 여겨지고 있지만, 미국에서 가을은 — 좀 심하게 말하자면 풋볼의 계절이라 해도 무방할 듯 합니다.
미국에서는 8월 말, 폭염이 누그러지기 시작하면 모든 동네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고등학교 풋볼 시즌이 열리고, 동네 잡화점 입구에 학교 깃발이 걸리고, 식당 칠판에는 “Go Eagles!”와 같은 응원 메시지가 적힙니다. 9월부터 대학 풋볼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NFL 시즌도 같이 열립니다.
미국 가을의 주말은 어김없이 풋볼 경기 스케줄로 꽉 짜여져 있습니다. 금요일 밤은 고등학교, 토요일은 대학, 일요일은 NFL. 어떤 가정은 세 날을 모두 풋볼을 보는데 할애합니다. 그러한 리듬이 4개월 동안 미국 동네를 들썩이게 만듭니다.
어찌보면 한국에서 KBO 야구 시즌이 한국의 봄·여름을 채우는 것과 비슷한 감이 있기는 하지만, 미국의 풋볼은 그보다 훨씬 더 짙고 훨씬 더 격렬합니다. 가을이라는 짧은 계절 안에 모든 풋볼의 스토리가 압축되고, 1월달에는 급기야 슈퍼볼이라는 것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야구는 162경기, 풋볼은 17경기. 한 경기 한 경기가 치루어질때마다 그 무게가 달라집니다.
미국에 갓 온 한국인이 “여기의 가을은 왜 이렇게 들떠 있지?”를 처음 느낄 수 있는 건 보통 이민 3~5년 차 쯤에서일 겁니다. 그제서야 — 가을 공기와 맞물려 풋볼 계절이 시작됐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둘은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프라이데이 나이트 라이츠(Friday Night Lights) — 한 마을의 자존심
텍사스의 작은 마을에 살아본 적이 있다면, “프라이데이 나이트 라이츠(Friday Night Lights)”라는 표현이 낭만적인 비유가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인구 3,000~5,000명 마을의 금요일 밤. 동네 식당 영업시간이 평소보다 일찍 끝나고, 모든 차가 고등학교의 한 풋볼 경기장으로 향합니다. 풋볼 경기장의 스탠드 한쪽에는 학생들 부모, 다른 한쪽에서는 — 그 학교를 졸업한 지 30년·50년 된 사람들이 앉아 잡담을 즐기는 모습이 쉽게 눈에 들어옵니다. 자기 손주 또는 아들이 뛰지 않아도, 자기가 다닌 학교의 경기는 매주 봅니다.
쿼터백을 맡은 학생은 그 마을의 작은 영웅입니다. 동네 슈퍼마켓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고, 식당 종업원은 그의 등번호와 이번 시즌 통계를 거의 다 외울 정도 입니다. 다음 날 토요일 아침, 동네 신문 1면은 어젯밤 경기 결과를 대서특필 합니다. 점수, 명승부 장면, 다음 주 상대팀은 누구일지에 대해.
한국 사람인 저에게 아직도 낯선 모습은 — 이것이 고등학교 풋볼 경기라는 사실입니다. 고등학생들의 게임에 마을 전체가 들썩이며 그렇게 깊이 결속돼 있는 모습이 아직은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한국에는 이런 풍경이 별로 없습니다. 한국의 학교 스포츠는 학생들과 부모들만의 영역이지, 마을 전체의 자존심이 걸려있지는 않습니다.
미국 작은 마을에서 풋볼은 — 공동체를 지탱하는 심장부와 같은 것입니다. 공장이 문을 닫고, 청년들이 떠나고, 마을이 작아져도 — 가을이면 8,000명이 다시 모이는 장소는 바로 풋볼 경기입니다. 미국에서 풋볼이 사라진다면 마을의 정체성이 사라진다고, 미국의 어떤 어르신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은 — 이 곳에서 그러한 광경을 본 사람만이 압니다.
매 플레이가 한 편의 짧은 이야기
풋볼이 한국 사람에게 처음 어색하게 느껴지는 이유 중의 또 다른 하나는 — 경기 도중 “왜 이렇게 자주 멈추지?” 입니다.
미국 풋볼과 달리 축구는 흐름입니다. 90분 동안 거의 끊김 없이 선수들이 공을 가지고 움직이는 경기입니다. 골이 들어가지 않고 0점으로 경기가 끝난다 해도 그 흐름 자체가 경기입니다. 그런데 미국 풋볼은 다릅니다. 한 플레이가 5~10초, 그리고 멈춥니다. 30~40초의 휴식, 다시 한 플레이. 한 경기 안에 약 150개의 플레이가 있고, 그 사이사이마다 시간이 멈춥니다.
처음 미국 풋볼을 보는 사람들은 답답할지도 모를 것입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러다 어느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 이 멈춤이 풋볼의 핵심이라는 것을.
풋볼에서 한 편의 플레이는, 한 편의 짧은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작(set up) → 결정(decision) → 실행(execution) → 결과(outcome). 코치가 사인을 보내고, 쿼터백이 라인을 읽고, 공이 던져지고, 누군가는 공을 잡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공을 놓치기도 합니다. 매 30초마다 새로운 드라마가 시작되고 끝나는 구조입니다. 미국 사람들이 풋볼을 보면서 그렇게 분석하고 토론하는 이유는 — 매 한 편의 플레이가 분석의 단위이기 때문입니다.
축구 경기가 계속 멜로디가 나오는 음악 같다고 한다면, 풋볼은 시(詩)와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 행이 끝나면 잠깐 멈추고, 다음 행을 읽기 전 그 의미의 진가를 음미하는 시 말입니다. 두 종목이 사람의 감각에 다르게 다가오는 것은 — 단순히 규칙의 차이가 아니라 이야기 구조의 차이 때문입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분석과 통계를 중요시하는 나라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 매 한편의 풋불 경기를 분리해서 분석할 수 있는 풋볼이 미국에 잘 맞는 종목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이해됩니다. 판타지 풋볼(Fantasy Football)이라는 통계 게임으로 매 경기마다 즐거움이 반복되는 것도 그 이유입니다.
주차장에서 시작되는 축제 — Tailgating
토요일에 펼쳐지는 미국 대학 풋볼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미국 풋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를 수 밖에 없습니다.
경기 시작 4~5시간 전부터 경기장 주차장에 차들이 들어옵니다. 차의 트렁크를 열고, 휴대용 그릴을 펴고, 햄버거·소시지·립을 굽습니다. 학교 색깔의 텐트를 치고, 학교 깃발을 세우고, 콜라·맥주를 박스째 꺼내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보여집니다. 옆 차의 동문과 인사하고, “You came from where?” — “Dallas. You?”와 같은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이것이 테일게이팅(Tailgating)입니다. 경기 자체보다 이 주차장 시간이 더 중요하고 좋다는 사람도 사실 많습니다. 가족·친구·동문이 1년에 몇 번씩 이 주차장에서 다시 만나고, 자녀가 그 학교에 입학하면 또 다시 같이 옵니다. 30년 동안 같은 주차 자리에서 같은 사람들과 만나는 사례도 흔합니다.
한국에서 야구 경기 가는 풍경과 비슷한 점도 있지만, 다른 점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한국의 야구장 분위기는 “응원과 치킨”이라면, 미국 풋볼의 테일게이팅은 “동문회와 가족 모임”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학교 정체성, 세대 간 연결, 동네 자존심이 그 주차장 안에 함께 녹아 들어가 있습니다.
한국 이민자가 처음 미국 친구의 초대로 테일게이팅에 가게 되면 — 그 환대의 깊이와 친절에 놀라게 됩니다. 처음 만난 사람이 햄버거를 권하고, 학교 농담을 가르쳐주고, 자기 자녀와 손주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합니다. 풋볼은 그저 그 모든 만남을 가능케 하는 일종의 핑계 같은 것입니다. 진짜 내용은 —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
슈퍼볼 일요일 — 미국의 가족 명절
매년 2월 첫째 일요일, 미국에서는 거의 그 하루가 멈추어 버린거나 다름 없습니다. 왜냐하면, 슈퍼볼 일요일(Super Bowl Sunday)이기 때문입니다. 1억 명 이상의 미국인들이 같은 시간에 슈퍼볼 방송을 봅니다. 추수감사절을 제외하면, 미국에서 가족과 친구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날이기도 합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추수감사절보다 더 큰 날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집집마다 — 또는 동네 펍마다 — 모임이 열립니다. 풋볼을 평소에 안 보는 사람도 그날은 봅니다. 음식이 차려집니다. 윙·나초·치즈딥·피자·맥주. 슈퍼볼 시간대에 나오는 광고(미국 슈퍼볼 광고는 30초에 700만 달러)를 다 함께 본 사람들은 “오늘 광고 중에 뭐가 제일 좋았어?” 다음 날 출근한 사람들의 첫 대화 주제가 되기도 합니다. 하프타임 쇼는 — 비욘세, 리한나, 어셔, 켄드릭 라마 — 그 자체로 글로벌 미디어 이벤트입니다.
미국 친구의 슈퍼볼 파티에 처음 초대받은 한국 이민자가 깨닫는 것은 — “이건 스포츠 시청이 아니라 일종의 의식이구나” 라는 것입니다. 화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 거실에 모인 사람들 사이의 대화·웃음·음식 — 그것이 진짜 행사입니다. 풋볼은 그 모임의 구심점일 뿐.
한국에서 큰 명절이라고 하면 추석·설입니다. 미국에서는 추수감사절·크리스마스·슈퍼볼 일요일. 풋볼이 미국의 명절 달력에 들어갔다는 사실 — 그것 하나로 풋볼이 미국 문화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설명됩니다.
자녀가 헬멧을 쓰던 날 — 한국 부모의 느린 회심
이민 1세대 한국 부모가 풋볼을 처음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는 날은, 보통 자녀가 학교 풋볼팀에 들어간 날입니다.
어느 가을 오후, 자녀가 무거운 헬멧을 들고 집에 옵니다. “Mom, I made the team.” 그 헬멧을 처음 본 한국 어머니의 마음에는 — 자랑스러움과 두려움이 동시에 엄습합니다. 풋볼은 위험한 종목이라는데, 우리 아이가 다치면 어쩌지. 그래도 너무 자랑스럽다.
다음 주 금요일 밤, 처음으로 그 작은 마을 경기장 스탠드에 앉습니다. 옆에 앉은 백인 학부모가 “Which one is yours?” 묻습니다. “Number 14” 이라고 답합니다. 그 백인 학부모는 “Oh, he’s fast! Good kid” 라고 답합니다. 그 한 문장이 — 그동안 미국에서 살면서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따뜻한 환대처럼 느껴집니다.
자녀가 들판에서 뛰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 어머니는 — 풋볼의 규칙도 잘 모르면서, 자녀의 등번호를 따라 눈으로 좇습니다. 그 30초의 플레이마다 가슴이 조금씩 뜁니다. 자녀가 공을 잡으면 환호하고, 자녀가 부딪히면 마음이 조마조마합니다.
35년을 살면서 본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 한국에서 갓 이민 온 어머니가 자녀의 첫 풋볼 경기 후, 진흙투성이 된 자녀를 안고 “You did so well, my son” 하면서 우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어머니에게 풋볼은 더 이상 낯선 미국 스포츠가 아니었습니다. 자녀가 미국에서 자라는 한 풍경, 그 풍경의 배경음악 같은 것이 됐습니다.
풋볼을 이해하는 것은 — 자녀가 자라나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합니다.
풋볼이 보여주는 미국이라는 나라
35년간 미국에 살면서, 미국 사람들처럼 아직도 풋볼을 사랑하게 되지는 못했습니다. 솔직히 지금도 한국 친구들과 만나면 축구 이야기가 더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풋볼을 — 이해하는 정도는 된 것 같습니다.
풋볼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거울입니다. 격렬한 신체 충돌(미국의 개척 정신과 적극적인 문화), 정밀한 전략과 통계(미국의 분석 문화), 코치라는 장수와 선수라는 군사(미국 나름의 위계 문화), 그러면서도 마칭 밴드와 치어리더와 홈커밍 퀸이 같이 등장하는 — 격식과 공동체와 가족적인 따뜻함. 한 종목 안에 이 모든 것이 같이 들어 있다는 점이 — 풋볼이 미국적인 이유입니다.
축구가 “개인 기교 + 흐름의 미학”이라면, 풋볼은 “위치별 전문성 + 협력의 결과물”입니다. 한 팀에 22가지 다른 역할이 있고,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정확히 자기 일을 해야 한 플레이가 성공합니다.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큰 그림을 만들어 나아간다” — 그것이 풋볼 안에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 풋볼은 공동체를 중요하게 여기는 종목의 스포츠입니다. 작은 마을의 금요일 밤, 대학 동문회의 토요일 주차장, 가족이 모인 일요일 거실, 1억 명이 동시에 보는 슈퍼볼 일요일. 미국이라는 거대하고 분산된 나라가, 가장 좁고 가장 친밀하게 한자리에 모이는 순간들이 — 풋볼이라는 한 종목 때문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닫는 말
10월 어느 금요일 저녁, 텍사스의 작은 마을 경기장. 그 자리에 처음 앉아본 날을 지금도 기억합니다. 풋볼의 규칙은 여전히 절반밖에 몰랐고, 우리 자녀가 뛰는 것도 아니었지만 — 그 마을 사람들의 함성, 마칭 밴드의 학교가, 백발의 할아버지가 손주를 자랑하던 작은 한마디. 그 모든 것이 한 종목이라는 핑계 위에 올라가 있는 광경이 — 어떤 의미에서 미국이라는 나라의 가장 정직한 모습 같았습니다.
축구는 세계의 종목입니다. 인류 전체가 함께 즐깁니다. 풋볼은 미국이 자기 손으로 만든 종목이고, 그래서 미국 사람들이 이 종목에 그토록 진심인 것입니다. 자기들이 만든 게임, 자기들 마을의 자존심, 자기들 가족의 명절, 자기들 자녀의 가을 풍경.
한국에서 온 우리에게 풋볼은 평생 “두 번째 종목”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사랑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미국에 사는 동안, 한 번쯤 — 작은 마을의 금요일 밤 경기장에 가보시기를 권합니다. 그날 밤 그 자리에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 — 그 한 장면을 직접 보게 됩니다.
가을이 오면, 어김없이 미국 동네의 분위기가 바뀝니다. 그 분위기의 의미를 한 번 이해하고 나면 — 미국에서 사는 우리의 가을도 — 조금 더 풍성해집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서 영어로 말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
- 1991년도의 그 청년에게
- 같은 핏줄, 다른 통계 — 미국 교포와 한국 사람 차이, 30년 만에 얼마나 달라졌는가?
-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되는 테일러 스위프트·트래비스 켈시 결혼
- 49ers의 전 풋볼 선수 라인배커 앨던 스미스 36세에 별세, 화려한 시작, 추락, 그리고 회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