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들이 미국에서 영어로 말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
스타벅스 카운터 앞에서 또는 맥도널드 주문대 앞에서, 머릿속으로 세 번 연습한 문장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그 1초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영어로 말하는 것이 어렵다고 하면, 사람들은 보통 “영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하셨어야지요”라고들 말합니다. 토익 900점, 토플 110점을 맞아도, 그 1초의 침묵은 그러한 점수와 절대적으로 무관하게 찾아옵니다. 35년을 미국에 살아도, 어떤 날은 여전히 — 핸드폰 화면에 모르는 번호가 뜨면 손이 잠깐 움찔합니다.
미국에 살아보지 않은 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35년이면 이제 영어가 모국어 같지 않으세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35년이 지난 지금도 어떤 단어 하나가 목구멍에서 멈추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건 단어를 모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이 글은 영어로 말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에 대한 답을 드리려는 글이 아닙니다. 다만 같은 환경하에서, 같은 침묵을 겪는 분들에게 —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라고 한 번 말씀드리고 싶어서 글을 쓰는 것입니다.
12년 동안 배운 영어와, 처음 만난 미국인 사이의 거리
한국에서 우리가 배운 영어는, 어쩌면 영어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시험을 치르기 위한 하나의 영어 과목이었던 것 같습니다.
빈칸 채우기, 어법, 문장 구조 분석, 독해 지문. 영어 수업 시간 동안 단 한 마디도 입을 열지 않고 영어 수업을 받고 또 어떤날은 영어 시험을 무난하게 치를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초/중/고등학교 12년을 보냈고, 우리는 토익 점수와 수능 영어 등급을 들고 미국 공항에 내렸습니다. 그리고 입국 심사관이 묻습니다.
“What’s your purpose of visit?”
머릿속에 답이 있습니다. 문법도 정확합니다. 그런데 입이 안 떨어집니다. 12년 동안 배운 적 없는 영어 대화 행위가 거기서 그리고 실전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 모르는 사람의 눈을 보고, 즉시, 소리로 답하는 일.
우리가 어려워하는 것은 영어가 아닙니다. “즉시 소리 내어 편안하게 말하는 일”이 어려울 뿐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12년 동안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습니다. 시험지가 답을 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미국 영어로 말하는 것이 필요한 어떤 곳에서 첫 1초가 막히는 것은, 우리의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영어와, 우리가 배운 영어가 처음부터 다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완벽하지 않으면 말하지 마라 — 우리 내면에 새겨진 피해의식
혹시 한국에서 학교 다닐때의 영어 수업을 포함한 학교 수업 시간이 기억나시나요?
어떤 수업시간에 한 학생에게 발표가 주어지고, 그 학생이 정답을 제대로 말하지 못했을 경우, 주위에 있던 다른 친구들이 작게 웃거나,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본인 스스로 굉장히 수치스럽게 생각합니다. 거기에다가 선생님은 “또박또박”말하라고 다그치기까지 합니다. 그 순간, 그 학생의 마음에 작은 무언가가 새겨집니다 — “틀리면 부끄럽다.” 그 학생은 그 후로 자발적으로 발표하기 위해 손을 들지 않거나, 어쩌다가 발표할 기회가 생기더라도 상당히 움츠러들게 됩니다.
그러나 미국 학교에서는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미국 초등학생들은 정답이 아니어도, 단어를 잘못 써도, 문장 구조가 엉성해도 — 무조건 손을 들고 질문을 던집니다. 설령 그것이 어리석은 질문일지라도 말입니다. 선생님은 “Great question”이라고 답하고, 친구들은 웃지 않습니다. 그렇게 30년을 자란 사람과, 12년을 “틀리면 부끄럽다” 라는 마음을 가지고 자란 사람이, 어느 날 같은 사무실에서 만납니다.
사실상, 미국인들 역시 영어 표현에 있어서는 부족한 면이 많습니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자기 영어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에 무심합니다. 한국인은 자기 영어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에 매일 부끄러워합니다. 언어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부끄러움의 차이입니다.
35년을 미국에 살아도, 발음 하나를 잘못 한 날 밤, 잠자리에서 그 장면이 떠오르는 저와 같은 분이 있다면 — 그것은 저희가 영어를 못 해서 그런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12년 동안 우리가 받았던 수업 시간의 작은 비웃음이, 아직 마음 어딘가에 상처로 남아 있다는 반응일 것입니다.
침묵이 미덕이던 나라에서, 침묵이 결함이 되는 나라로
한국 기업들의 보통 회의실에서는 가장 윗사람이 결론을 말하곤 합니다. 윗사람이 무언가를 말하기 전에 아래 사람들이 떠드는 것은 결례라고 여겨집니다. 좋은 직원들은 잘 들어야 하고, 묻기 전에 답하지 말라는 묵계가 있습니다.
미국 회의실에서는 다릅니다. “What do you think, Mr. Kim?” 누군가 당신에게 묻기 전에, 당신이 의견을 먼저 말해야 합니다. 침묵하면 “준비가 안 됐다” 또는 “의견이 없다”로 해석됩니다. 의견이 없는 사람은 — 다음 회의에 부르지 않습니다.
35년 미국에서 일하면서, 한국 회의 문화 안에서 자란 사람이 가장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 “You’re so quiet.”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아립니다. 한국에서 우리는 침묵을 미덕으로 배웠는데, 여기서는 그것이 결함이 됩니다.
영어를 못 해서 침묵하는 것이 아닙니다. 침묵이 어색하지 않은 나라에서 자라서 침묵하는 것입니다.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미국 동료는, 우리가 영어를 못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어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다른 문법으로 자란 사람일 뿐입니다.
한국어로는 우리가 깊은 사람인데
이게 가장 슬픈 부분입니다. 한국어로 말할 때, 우리는 모든것을 풍부하게 표현할 줄 압니다. 비유를 쓰고, 농담을 던지고, 미묘한 감정의 그림자까지 다 한국말로 표현합니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그게 어떻게 가능해”라고 말할 때 — 그 안에는 놀라움·인정·약간의 부러움이 한 음절에 같이 담겨 있습니다.
영어로 같은 감정을 표현하면 — “How is that possible”이라는 한 문장이지만, 그 문장에는 놀라움만 남고, 나머지 빛깔은 전부 사라집니다. 그렇게 우리는, 영어로 말할 때 자기 자신의 절반만 옮길 수 있습니다.
35년을 살면서 가장 자주 느낀 것은, “내 진짜 모습은 한국어로만 표현할 수 있다”는 슬픔이었습니다. 미국 동료들은 영어로 일하고, 영어로 농담하고, 영어로 슬퍼하지만, 저는 그렇게 영어로 반만을 표현하면서 미국 사람들에게 의도치 않게 저를 “반 정도만” 보여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국 친구들이 알던 그 입체적인 제가 아니라, 평면 같은 저를. 그래서 어떤 날은 미국 동료가 저를 잘 안다고 말하면, 저는 솔직히 약간 불편했습니다. 그가 아는 저는, 제 절반이었기 때문입니다.
언어가 단순히 의사소통 도구라면 이러한 슬픔은 없을 텐데 — 언어는 결국 우리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입니다. 그래서 새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는 일은, 자신의 모든것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한데, 사실 영어로 표현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일부를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러한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한국 친구를 만나고, 한국 교회에 나가고,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 드라마를 봅니다. 그건 향수가 아니라 — 자기 자신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전화기를 보며 망설이는 1분
미국에 사는 분이라면 누구나 알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있어 미국 회사 또는 관공서에 전화를 해야만 할때의 그 작은 스트레스와 두려움.
문자로 모든 것을 처리할 수 있는 시대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는 아직도 어떤 것은 전화로만 됩니다. 보험사 클레임. 의사 약속 변경. 자녀의 학교 문제로 해당 학교의 행정 직원을 만나는 일. 거기에다가 콜센터의 자동응답기까지 약을 올립니다 — “Press 1 for English” 누른 다음에 “Please say your account number.” 그러나 콜센터의 자동응답기는 우리들의 발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Wun-Two-Three…”라고 또박또박 말하면, 자동응답이 “I didn’t catch that”이라고 답합니다. 다시 말합니다. 또 “I didn’t catch that.” 세 번째에 — 사람으로 연결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첫 마디에서 우리의 억양을 알아채고, 천천히 큰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 “천천히, 큰 목소리”가 친절일 수도, 모욕일 수도 있다는 것을 — 우리는 압니다. 미국인은 모릅니다. 본인은 친절을 베푸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 친절을 받으면서, 한 살 어린아이가 된 것 같은 감정이 잠깐 스쳐지나 갑니다. 그리고 그 감정을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설명하면 “왜 그렇게 예민하냐” 라는 답이 돌아오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그 감정을 혼자 삼키고, 영어를 좀 더 연습해야겠다라는 다짐만 합니다.
자녀가 통역하던 날
이민 1세대가 가장 자주 마음이 무거워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자녀가 학교에서 가져온 종이를 보면서, 자녀가 옆에서 한국어로 설명해줄 때. 자녀가 어른이 되어 처음 부모의 영어를 “내가 할게요”라고 대신 처리해주는 날. 자녀가 자라서, 부모보다 영어가 더 자연스러워지고, 어느 날 친구들 앞에서 부모의 영어 발음을 작게 부끄러워하는 그 짧은 표정을 우리가 알아챈 날.
그리고 그 후 — 자녀가 다 자라서, 어느 날 부모 앞에 앉아서 한국어로 이렇게 말하는 날도 옵니다. “엄마, 나 한국말하는 것이 너무 어려워.”
영어가 어려워서 슬픈 것이 아니라, 영어 때문에 가족 안에서 언어가 갈리는 것이 슬픈 것입니다. 부모는 한국말로 가장 깊게 표현할 수 있고, 우리의 자녀들은 영어가 훨씬 자연스럽고. 우리는 한 가족인데, 가장 깊은 마음을 같은 언어로 나눌 수 없는 날이 옵니다. 그 슬픔은 영어를 더 공부한다고 줄어들지 않습니다. 그건 언어 문제가 아니라, 시간과 세대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이 슬픔을 이해하는 미국 동료는 거의 없습니다. 한국 부모들끼리만,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압니다. 35년을 살아도, 자녀가 영어로 빠르게 농담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면, 자랑스러우면서도 어딘가 작게 외롭습니다. 그 두 감정이 같이 오는 것을 — 한국 부모들만 압니다.
35년이 지나도, 어떤 단어들
저는 35년이 지난 지금도, 어떤 영어 단어는 입에서 잘 안 나옵니다.
병원에서 자기 증상을 정확히 설명하기 위해 무언가를 표현할때면, “It hurts”인지 “It throbs” 인지 “It aches” 인지 “It stings” 인지 헷갈릴때가 너무 많습니다. 한국말로는 “콕콕 쑤셔요”, “뻐근해요”, “따끔거려요”라고 한 음절에 모든것을 정확히 담을 수 있는 그 미묘함이, 영어로 표현하기에는 많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한국 어르신들은 미국 의사 앞에서 자주 “It hurts”만을 반복합니다. 의사는 “Where? How?”라고 묻고, 어르신은 손으로 가리킬 뿐입니다.
법원에서, 변호사 앞에서, 응급실에서 — 결정적인 순간에 정확한 단어가 안 나오는 두려움. 35년을 살아도 그 두려움은 줄어들기는 해도,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한국 1세대 이민자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은 — 자기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영어로 자기 마음을 정확히 전달해야 하는 순간입니다. 변호사와 합의서에 서명할 때. 의사가 자녀의 병명을 설명할 때. 입국 심사관이 추가 질문을 할 때.
그리고 어떤 날은 — 30대에 미국에 와서, 한국어로 자라난 시간보다 미국에서 보낸 세월이 더 길어진 그 날. 그날은 한국어 단어 하나도 제대로 안 나올때가 있습니다. “그게… 뭐였더라…” 한국 친구와의 통화 중에, 한국어 단어가 막히는 자기 자신에 놀라는 날. 영어도 한국어도 모두 어딘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두 언어 사이의 좁은 골목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골목이 외롭다는 것을, 같은 골목에 사는 사람만 압니다.
미국에서 영어로 말하는 것, 그래도 — 35년의 결론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 슬프고 무겁다고 느끼셨다면 — 마지막 한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35년을 미국에 살면서 영어가 어려웠던 그 모든 순간에도, 저는 그렇게 살아왔고 아직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족을 지켰고, 자녀들을 키워냈고, 사업을 21년 동안 했고, 텍사스 주정부에서 8년 동안 일했고, 지금은 여기에서 미국 친구들과 함께 늙어가고 있습니다. 영어가 완벽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그럭저럭 살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단 하나입니다 — 영어가 완벽해야 미국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 사람들의 대부분은, 한국 분들이 영어로 말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그 자체로 따뜻하게 봅니다. 단어가 틀려도, 어순이 어색해도, 발음이 한국 사람 같아도 — 자기 모국어를 어렵게 익혀서 말하는 사람을 가볍게 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그 시선은, 종종 우리 마음 안에 있습니다. 12년 동안의 영어 시간에 배웠던 그 습관이, 아직도 우리를 잡고 있는 것뿐입니다.
오늘 어디에선가 영어를 더듬더듬 말하셨다면 — 그건 실패가 아닙니다. 한 발자국 전진한 것입니다. 35년을 살아도 그 발자국이 매일 매일 필요한 곳이 미국입니다. 어떤 날은 영어가 잘 나오지만, 어떤 날은 꽉 막혀버립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도, 어떤 날은 말이 꽉 막힙니다. 다만 그들은 그것을 “그냥 그런 날”이라고 부르고, 우리는 그것을 “내가 영어를 못 해서”라고 자책합니다. 같은 일에 다른 이름을 붙이고, 다른 무게를 진 채로 우리는 살아갑니다.
영어가 어려운 것은 우리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한국어로 깊은 사람이라서, 다른 언어로 옮길 때 그 깊이가 그대로 가지 않아서 — 그래서 어렵습니다. 그 깊이를 잃지 마시고, 다만 천천히 옮겨 가십시오. 35년이 지나도 다 옮겨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살아집니다. 깊이는 한국어 안에 그대로 있고, 영어 안에는 새로운 자기가 천천히 자랍니다. 두 자아가 한 사람 안에서 같이 살아가는 일 — 그것이 이민 1세대의 진짜 모습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영어가 그렇게 어려운 그 모든 순간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 두 세계를 살아내는 사람의 처절함과 정직함이라고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영어로 말하면서 부끄러움과 불편함이 있었다면. 그래도 괜찮습니다. 저도 35년째,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영어의 불편함이 우리를 부족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부족함을 껴안으면서도 영어로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가는 그 용기가 — 우리를 여기까지 살아오게 한 것입니다.
오늘 미국 어딘가에서, 어떤 가계 카운터 앞에서든지, 누군가의 전화기 앞에서든지, 누군가의 자녀 학교 행정실 앞에서든지 — 같은 불편함을 껴안고 서 있는 분들께 “우리는 같은 골목에 살고 있습니다”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 골목이 오늘은 조금 덜 힘들고 외롭기를 바라며, 이 글을 올려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