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1년 9월 19일, 제임스 가필드 대통령 죽인 사람들은 암살자가 아닌 의사들
1881년 9월 19일은 미국 제20대 대통령 가필드가 사망한 날입니다. 총격 79일 후 사망했지만, 부검 결과 총알은 완전히 무해한 상태였습니다. 비위생적 치료가 대통령을 죽인 이 사건이 미국 의료를 어떻게 바꿨는지를 살펴봅니다.
1881년 9월 19일, 미국 제20대 대통령 제임스 가필드(James A. Garfield)가 뉴저지주 엘버런(Elberon)에서 사망했다. 총격을 당한 지 정확히 79일 만이었다. 그런데 사후에 밝혀진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총알은 치명적인 위치에 있지 않았고, 몸이 스스로 캡슐 형태로 감싸 무해하게 만들어두었다는 것이다. 의사들이 더 오래 손가락을 넣어 더 깊이 파헤치지 않았더라면, 가필드는 살았을지도 모른다.
1881년 7월 2일: 기차역에서 울린 두 발의 총성

1881년 7월 2일 오전 9시 20분. 제임스 가필드 대통령은 매사추세츠주 윌리엄스 칼리지 졸업식 참석을 위해 워싱턴 D.C.의 볼티모어-포토맥 철도역으로 들어섰다. 국무장관 제임스 블레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던 그의 등 뒤에서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총을 쏜 사람은 찰스 줄리어스 기토(Charles Julius Guiteau)였다. 그는 제임스 가필드가 선거 유세를 할 때 연설문 초안을 하나 써서 배포한 뒤, 자신이 가필드의 당선 공로자라고 확신하고 프랑스 주재 영사직을 요구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기토는 나중에 일기에 “하나님이 제임스 가필드를 제거하라고 명령했다”고 썼다.
첫 발은 제임스 가필드의 오른쪽 팔을 스쳤다. 두 번째 총알은 등 뒤에서 들어가 척추 가까운 곳으로 향했다. 그러나 총알은 척추를 건드리지 않았다. 실제로는 척추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 조직에 박혀 있었고, 대통령의 면역 체계는 즉시 총알을 감싸기 시작했다.
총격 직후 제임스 가필드의 맥박은 안정적이었다. 당장 의식을 잃지도 않았다. 그 시점에서 올바른 치료를 받았다면 생존 가능성이 충분했다는 것이 오늘날 의학계의 평가다.
12명의 의사, 12번의 손가락질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총격 소식이 전해지자 의사들이 몰려들었다. 주치의로 지정된 닥터 윌라드 블리스(Doctor Willard Bliss — 어머니가 ‘닥터’라는 이름을 붙여 준 것이 그의 실제 이름이었다)를 포함해, 이날 최소 12명의 의사가 상처 부위에 손가락과 기구를 집어넣어 총알의 위치를 찾으려 시도했다.
이들은 한 가지를 하지 않았다: 손을 씻지 않았다.
1867년 영국의 조지프 리스터(Joseph Lister)는 카볼산(carbolic acid)을 이용한 소독 수술 기법을 발표했고, 유럽 의학계에서는 이미 ‘무균 수술’이 확산되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의 많은 의사들은 세균론을 믿지 않거나, 믿더라도 “영국식 과장”이라며 무시했다. 블리스 박사 역시 이 흐름 안에 있었다.
총격 직후 깨끗했던 상처 통로는 이후 수십 차례의 비위생적 탐침으로 오염됐다. 처음에 손가락 두 개 너비(약 5cm)이던 상처 통로는, 79일이 지날 때쯤 45cm 이상으로 늘어나 있었다. 두 개의 농양이 형성됐고, 패혈증(Sepsis)이 전신으로 퍼졌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금속 탐지기

총격 이후 여러 시도가 이어졌다. 가장 극적인 것은 전화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시도였다. 벨은 금속 탐지 원리를 이용한 전기 장치를 직접 제작해 대통령의 병실을 찾았다.
장치는 실험실에서는 잘 작동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침대 위에서는 어디서든 신호가 울렸다. 이유는 나중에 밝혀졌다. 침대 매트리스 안에 금속 스프링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빅토리아 시대에 이 새로운 발명품의 혁신이 아이러니하게도 탐지를 방해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블리스 박사의 고집이었다. 블리스는 벨에게 오른쪽 상처 부위 주변만 탐색하게 했다. 자신이 총알이 그쪽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총알은 왼쪽에 있었다. 국립공원관리청(NPS)의 기록에 따르면, 벨이 나중에 회고하기를 “블리스 박사가 더 넓게 탐색하도록 허락했다면 총알 위치를 찾았을 것”이라 했다.
9월 19일: 대통령의 마지막 날

8월이 가면서 제임스 가필드의 상태는 급격히 악화됐다. 체중은 80킬로그램에서 45킬로그램 이하로 줄었다. 구토가 계속됐고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의사들은 해안 공기가 회복에 좋을 것이라 판단해 9월 6일 특별 열차를 편성해 뉴저지주 엘버런 해안가 별장으로 이송했다.
그곳에서 2주를 더 버텼으나 회복은 없었다. 1881년 9월 19일 오후 10시 35분, 제임스 가필드 대통령은 심장마비·대량 출혈·패혈증으로 숨을 거뒀다. 취임 199일 만이었고,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짧은 재임 기간이다.
부검이 밝힌 충격적인 진실
부검 의사들은 총알을 즉시 찾아냈다. 블리스가 79일간 믿어온 위치의 반대편, 척추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 조직 안에 총알이 박혀 있었다. 그리고 총알 주위에는 신체가 만들어낸 캡슐 조직이 완전히 무해한 상태로 완벽하게 감싸고 있었다.
부검에서 발견한 또 다른 것은, 의사들의 탐침이 만들어낸 감염 통로였다. 이 통로는 가슴에서 골반까지 50센티미터 가까이 뻗어 있었다.
재판에서 기토는 “나는 대통령을 쐈지만, 의사들이 죽였다(I shot the President, but his physicians killed him)”고 주장했다. 역설적으로, 의학적으로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기토는 1882년 6월 30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제임스 가필드의 죽음이 바꾼 것들
이 사건은 미국 의학사에 두 가지 큰 변화를 촉발했다.
첫째, 소독 수술의 정착. 제임스 가필드 사건의 충격은 미국 의학계가 리스터의 소독 기법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계기가 됐다. 1880년대 후반부터 미국 수술실에서 멸균 기구와 소독 절차가 빠르게 확산됐다.
둘째, 엽관제(Spoils System) 개혁. 기토가 엽관제의 산물이었다는 점에서, 가필드의 사망은 1883년 펜들턴 공무원 개혁법(Pendleton Civil Service Reform Act) 통과를 앞당겼다. 이 법은 연방 공무원을 정치적 연줄이 아니라 시험으로 선발하는 원칙을 확립했다 — 오늘날 미국 공무원 제도의 뿌리다.
지금의 미국 의료와 이 이야기의 연결
19세기 미국 의사들이 손을 씻지 않고 상처를 탐침하던 그 시대와, 오늘날 미국 의료 시스템 사이에는 140년의 거리가 있다. 오늘날 미국의 감염 관리 기준, 수술실 위생 프로토콜, 그리고 의사 면허 체계 모두 이런 비극에서 교훈을 얻어 발전했다.
재미동포로서 미국 의료 시스템을 이용할 때, 한국어로 소통 가능한 의사를 찾아 충분히 소통하는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 미국에서 한국어 가능 의사 찾는 방법을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또한 미국 연간 건강검진 가이드에서 보험을 최대한 활용한 정기검진 방법을 확인해 두자.
가필드가 살던 1880년대는 1882년 중국인 배제법이 통과되고, 20여 년 뒤에는 한인들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첫 이민을 떠나는 시대였다. 지금과는 다른 나라 같은 그 시절, 의료의 현실 또한 그러했다.
오늘날 미국에서 아플 때 응급실을 가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응급실 vs 긴급진료센터 선택 가이드에서 올바른 결정을 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어느 공간에서든, 오늘의 의사들은 적어도 손을 씻는다.
💬 이 역사 이야기, 알고 계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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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책 고지: 이 글은 공신력 있는 1차 출처(국립공원관리청, 밀러 센터, 브리태니커, 위키피디아 학술 편집본)를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역사적 해석이 학자마다 다를 수 있는 부분은 본문에서 복수의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 미국 국립공원관리청 (NPS) — The Tragedy and Triumph of President Garfield and Alexander Graham Bell
- 밀러 센터 (Miller Center, 버지니아대) — James A. Garfield: Death of the President
- Wikipedia — Assassination of James A. Garfield
- Britannica — How Did James A. Garfield Die?
- National Geographic — How did James Garfield di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