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5, 2026

1892년 9월 8일, 학교에서 매일 외우는 미국 충성서약문, 134년 역사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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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서약문
보관된 글입니다. 이 글은 이전에 운영하던 사이트의 아카이브에 남아 있는 기록입니다. 미국 생활·이민·비자·유학에 대한 최신 정보는 Know USA(knowusa.net)에서 새로 정리해 발행하고 있습니다.

1892년 9월 8일, 미국 어린이 잡지 The Youth’s Companion에 짧은 글 하나가 실렸다. “I pledge allegiance to my Flag and the Republic for which it stands: one nation, indivisible, with liberty and justice for all (나는 나의 국기와 그 국기가 상징하는 공화국에 충성을 맹세합니다.

이 나라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국가로서, 모두에게 자유와 정의를 보장합니다).” 이것이 미국 충성서약문(Pledge of Allegiance)의 시작이었다. 오늘(2026년 9월 8일)이 그 134주년이다.

미국 공립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한인 부모라면, 아이들이 매일 아침 교실에서 오른손을 가슴에 얹고 읊조리는 이 문장이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간단한 31개 단어의 뒤에는 사회주의, 냉전, 나치 경례, 대법원 판결이 얽혀 있다.

글쓴이는 기독교 사회주의자 목사였다

충성서약문을 쓴 사람은 프랜시스 벨라미(Francis Bellamy, 1855~1931)다. 스미소니언 국립미국역사박물관(Smithsonian 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과 스미소니언 매거진의 기록에 따르면, 벨라미는 침례교 목사이자 기독교 사회주의(Christian socialism) 운동가였다. 그는 경제적 불평등과 이민자 증가로 혼란스럽던 19세기 말 미국에서, 나라에 대한 공통된 정체성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1892년은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 400주년이 되는 해였다. The Youth’s Companion 편집장 제임스 업햄(James B. Upham)이 전국 학교 기념행사를 기획하면서 벨라미에게 서약문 작성을 의뢰했다. 벨라미는 프랑스 대혁명의 구호 “자유, 평등, 우애(Liberté, Égalité, Fraternité)”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원래 “liberty, equality, and fraternity(자유, 평등, 우애)”를 넣고 싶었지만, 당시 미국 사회에서 ‘평등’이 논란이 될 것을 우려해 결국 “liberty and justice for all”로 마무리했다고 기록에 나온다.

원문과 현재 문구, 4번의 변경

지금 학교에서 외우는 충성서약문은 1892년 원문과 다르다. 134년 사이에 네 차례 수정됐다.

연도 변경 내용 배경
1892 원문: “I pledge allegiance to my Flag…” *The Youth’s Companion* 초판
1923 “my Flag” → “the Flag of the United States” 재향군인 단체, 이민자들이 ‘자기 나라 국기’를 연상할 우려 제기
1924 “…of America” 추가 미국 재향군인 전국대회에서 결의
1954 “one Nation under God, indivisible…” 냉전: 공산주의·무신론 소련에 대항하는 상징적 조치

이 네 번의 변화 중 가장 큰 논란이 된 것은 1954년 “under God”의 삽입이다. History.com과 스미소니언 매거진에 따르면, 1952년 가톨릭 단체 Knights of Columbus가 의회에 청원을 시작했고,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뉴욕의 한 장로교회 설교에서 영감받아 법안을 지지했다.

아이젠하워는 1954년 6월 14일(국기의 날, Flag Day) 법안에 서명하며 “우리 나라의 영적 토대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베를린 장벽 건설로 상징되는 냉전의 긴장이 고조되던 시절의 산물이었다.

벨라미 경례: 나치식 경례처럼 생긴 이유

1892년 원래 충성서약문 낭독 방식은 오늘날과 전혀 달랐다. 의회도서관과 역사 자료에 따르면, 초기에는 오른팔을 앞으로 쭉 뻗고 손바닥을 위로 향하는 ‘벨라미 경례(Bellamy Salute)’를 함께 했다.

1920~30년대 이탈리아 파시즘, 독일 나치즘이 매우 유사한 경례를 채택하자 미국에서는 혼동과 우려가 커졌다. 결국 1942년 12월, 의회가 Flag Code를 개정하여 오른손을 가슴에 얹는 방식(hand over heart)으로 교체했다.

이 결정은 미국 내 반(反)나치 여론이 반영된 것이었으며, 대부분의 미국인은 이 역사적 사실을 모르고 오늘날 자연스럽게 손을 가슴에 얹고 있다. 학교에서 자녀가 손을 가슴에 얹고 서약문을 외울 때, 그 제스처 뒤에는 2차 세계대전의 역사가 있는 셈이다.

강제할 수 없다: 대법원 판결 West Virginia v. Barnette (1943)

많은 한인 부모들이 궁금해하는 것이 있다. “학교에서 충성서약문을 강제로 외우게 할 수 있나?” 정답은 아니오다. 미국 대법원은 1943년 6월 14일 West Virginia State Board of Education v. Barnette(319 U.S. 624) 사건에서 6대 3으로 위헌 판결을 내렸다.

배경은 이렇다. 여호와의 증인 신자인 마리(Marie)와 가시(Gathie) 바넷 자매가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학교에서의 서약문 낭독을 거부했다가 퇴학 처분을 받았다.

대법원은 로버트 잭슨(Robert H. Jackson) 대법관의 의견으로, 공립학교에서 학생에게 국기에 대한 경례와 충성서약문 낭독을 강요하는 것은 수정헌법 제1조의 표현의 자유 위반이라고 판시했다. 잭슨 대법관은 판결문에서 유명한 문장을 남겼다:

“If there is any fixed star in our constitutional constellation, it is that no official… can prescribe what shall be orthodox in matters of politics, nationalism, religion, or other matters of opinion.” (헌법의 별자리에 고정된 별이 하나 있다면, 어떤 공무원도 정치·국가주의·종교의 문제에서 정통 교리를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판결은 지금도 유효하다. 자녀가 충성서약문 낭독을 원하지 않는다면, 교사나 학교는 강요할 수 없다. 한인 부모가 자녀의 권리를 묻는다면, 이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들 수 있다. 유권자 등록과 시민권 행사처럼, 알아야 지킬 수 있는 권리다.

“under God”은 오늘도 논쟁 중

1954년에 삽입된 “under God” 구절은 오늘날에도 헌법적 논란의 대상이다. 정교분리(수정헌법 제1조 Establishment Clause)를 위반한다는 주장과, 단순한 애국적 표현이라는 반론이 반복해서 법원에 제기됐다.

연방 항소법원에서 위헌 판결이 나온 적(2002년 9th Circuit)도 있지만, 이후 절차상 이유로 대법원 최종 판결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무신론자 또는 비기독교 신자 가정이 자녀가 “under God” 부분만 빼고 낭독해도 학교가 제재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법적 해석이다.

한인 독자와의 연결: 귀화, 학교, 그리고 “liberty and justice for all”

충성서약문은 한인 이민자에게 여러 층위에서 의미를 가진다. 먼저 귀화(시민권 취득). 미국 시민이 되는 의식에서 충성서약(Oath of Allegiance)을 낭독한다. 이것은 충성서약문과 다른 문서지만, “liberty and justice for all”이라는 가치를 받아들이는 공통된 행위다. 귀화 신청 처리 현황과 함께, 시민권 시험 100문항에도 충성서약문 관련 내용이 포함돼 있다.

다음으로 공립학교. 한인 자녀들이 매일 아침 교실에서 이 문장을 외운다면, 그 역사를 부모가 알고 자녀에게 설명해 줄 수 있다. “under God”이 왜 거기 들어갔는지, 왜 처음엔 달랐는지, 강요할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있다는 사실을.

마지막으로 “liberty and justice for all”이라는 마지막 구절의 의미다. 벨라미가 원래 “평등”을 넣고 싶었지만 넣지 못했던 자리에 놓인 이 문장은, 1963년 워싱턴 행진에서 MLK가 꿈꾼 미국의 약속이기도 하고, 1882년 중국인 배제법과 같이 그 약속이 배신당한 역사의 아픔이기도 하다.

왓츠 폭동을 비롯한 시민권 운동이 그 약속의 이행을 촉구했고, 19차 수정헌법의 여성 참정권도 그 연장선 위에 있다. 134년이 지난 지금도 “all”의 의미는 계속 확장되고 있다.

💬 여러분의 경험을 들려주세요

자녀가 미국 공립학교에 다니고 있다면, 충성서약문을 외우는 장면을 본 적 있으신가요? 아이가 “under God”이 무슨 뜻인지, 왜 외워야 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귀화 시험을 준비하시는 분이라면 시민권 취득 선서식(Oath Ceremony)의 경험도 함께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 그 순간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댓글로 이야기를 남겨주시면 같은 경험을 한 다른 한인들에게 작은 울림이 될 것입니다.

다음에 어떤 미국 역사 에피소드를 다뤄줬으면 하는지도 알려주시면 주제 선정에 참고하겠습니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이 글은 스미소니언 국립미국역사박물관(americanhistory.si.edu), 스미소니언 매거진, ushistory.org, History.com, 미국 헌법센터(constitutioncenter.org), Justia Supreme Court 공개 판결문을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충성서약문의 역사는 일부 세부사항에 대해 자료마다 다른 부분이 있으며, 이 글은 복수의 1차 출처에서 교차 확인된 사실만 수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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