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년전인 1923년 9월 1일 관동 대지진과 조선인 학살, 미국 외교 문서가 기록한 역사
오늘로부터 정확히 103년 전인 1923년 9월 1일, 일본 관동(關東) 지방을 규모 7.9의 강진이 강타했다. 소위 관동 대지진으로 불리우면서 10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 대재앙은 단순한 자연재해로 끝나지 않았다.
관동 대지진 직후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수천 명의 조선인이 일본 자경단과 군경에 의해 학살당했다. 이 사건은 미국 국무부 외교 문서와 미국 언론에도 기록되어 있으며, 재미교포 역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맥락이 된다.
이 글은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국무부 외교 전문(State Department diplomatic cables), 당시 미국 언론 보도, 한국역사연구원 및 학술 연구를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희생자 수 등 일부 수치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어 출처를 명시했습니다.
관동 대지진, 당시 무슨 일이 발생했는가?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일본 현지시각), 규모 7.9(당시 측정 방식 기준, 현대 추산으로는 M7.9~8.2)의 대지진이 일본 가나가와현 사가미만(相模灣) 북서쪽을 진원으로 도쿄·요코하마 등 관동 지방 일대를 강타했다.
- 관동 대지진으로 인한 사망·실종자: 약 105,000명 (일본 내무성 통계, 1923년)
- 관동 대지진에 의한 이재민: 약 340만 명
- 주요 피해 지역: 도쿄(東京), 요코하마(橫濱), 가나가와(神奈川), 사이타마(埼玉), 지바(千葉)
- 특수 요인: 점심시간 직전 지진 발생, 화롯불(아궁이) 사용 중이었고 강한 바람까지 겹쳐 동시다발적 화재가 시내 대부분을 불태웠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관동 대지진을 20세기 전반부 가장 파괴적인 지진 재해 중 하나로 기록하고 있다.
유언비어와 학살, 재앙 속의 재앙

관동 대지진 발생 당일부터 도쿄·요코하마 일대에 근거 없는 소문이 빠르게 확산됐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조선인들이 방화와 약탈을 하고 있다”
“조선인 폭동이 일어났다”
일본 정부와 군 당국은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지역 주민들이 자경단(自警團)을 조직하도록 사실상 허용했다. 자경단은 죽도, 일본도, 농기구 등으로 무장하고 검문소를 설치해 조선인으로 의심되는 사람을 즉결 처형했다.
희생자 규모
학살 규모는 자료마다 차이가 크다.
- 일본 사법부 공식 조사(1923년) 기록: 231명, 당시 당국의 축소 기록으로 학계에서는 이를 신뢰하지 않는다
- 조선총독부 추산: 약 832명
- 독립운동가·재일 조선인 단체 추산: 6,000명 이상
- 현대 학계 추정치: 최소 2,000명~6,000명 이상 (일본 역사학자 요시미 요시아키, 강덕상 등)
중국인 약 740명도 같은 폭력의 희생이 됐으며, 오키나와 출신자와 일부 일본인도 조선인으로 오인 당해 피해를 입었다.
미국이 기록한 학살, 국무부 외교 문서

당시 주일 미국 대사관은 학살 사실을 워싱턴에 보고했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 보관된 외교 전문들은 아래 내용을 담고 있다.
- 주일 미국 총영사 사무소가 요코하마에서 목격한 조선인 학살 현장 증언
- 미국 선교사들이 보낸 편지와 보고서, 당시 일본에 체류 중이던 미국 선교사 다수가 학살 현장을 목격하거나 증언을 수집했다
- 미국 해군 함정 승무원들의 목격담 (요코하마 항 정박 중)
그러나 미국 정부는 당시 일본과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1922년) 이후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학살에 대한 공식 항의나 외교적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미국 언론의 보도
뉴욕 타임스(New York Times)는 1923년 9월 학살 관련 기사를 여러 차례 보도했다. 당시 기사들은 “수천 명의 조선인이 자경단에 의해 살해됐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는 미국에 거주하던 한인 커뮤니티에도 큰 충격을 줬다.
재미한인 사회의 반응
당시 하와이와 미국 본토에는 이미 수천 명의 한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1903년 하와이 이민으로 시작된 재미한인 사회는 1923년 관동 대지진 이후의 학살 소식을 접하고 즉각 반응했다.
- 대한인국민회(Korean National Association, KNA): 관동 대지진 학살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생존자 지원 모금 운동을 벌였다
- 하와이 한인 신문들: 《한국인》(Korean Pacific Weekly) 등이 학살 관련 기사를 연속 보도하며 한인 커뮤니티의 분노를 기록했다
- 독립운동과의 연결: 일제의 폭력성이 다시 드러남으로써 미국 내 독립운동 지원 열기가 높아졌다
이 사건은 재미한인들에게 일본 식민 지배의 잔혹함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고, 독립운동 자금 모금과 외교 활동에 동력을 더했다.
반아시아 차별과의 연결고리

1923년 관동 학살은 미국 내 반아시아 차별 역사와도 맥락이 연결된다.
- 바로 전해인 1922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일본인의 귀화를 금지하는 판결(Ozawa v. United States)을 내렸다
- 1882년 중국인 배제법 이후 이어진 아시아인 배척 정서가 미국과 일본 양쪽에 흘렀다
- 1924년 이민법(Johnson-Reed Act)은 아시아인 이민을 전면 금지하며 “배제의 시대”를 완성했다
재일조선인이 일본에서 당한 폭력과 재미한인이 미국에서 겪은 법적 차별은 다른 형태였지만, 같은 뿌리에서 나온 아시아인 혐오(Sinophobia, anti-Korean sentiment)의 두 얼굴이었다.
20세기 미국 내 차별 역사는 1963년 워싱턴 행진으로 이어지는 시민권 운동, 1965년 왓츠 폭동 등과 함께 미국 사회가 오랫동안 씨름해온 과제였다.
일본은 이에 대해 공식 사과 전혀 없었음
관동 학살은 100년이 넘도록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받지 못했다.
- 도쿄도는 매년 9월 1일 요코아미초 공원(橫網町公園)에서 관동대진재 희생자 추도식을 열어왔으나, 조선인 희생자 추모 관련 조화(弔花) 보내기는 2017년 이후 고이케 유리코 도지사가 거부하고 있다
- 일본 학교 교과서에서 학살 사실의 기술은 축소되거나 빠지는 추세다
- 한국 정부는 외교부를 통해 정확한 역사 기록과 공식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역사 인식 갈등은 한일 관계에 여전히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으며, 재미교포 사회도 미국에서의 추모 활동과 역사 교육을 통해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VJ Day와의 역사적 연결
1945년 8월 15일(미국 시각 8월 14일) 일본의 항복과 한국 광복은, 1923년 학살과 1910년 강제 병합으로 이어진 일제 식민 지배가 35년 만에 끝나는 순간이었다. 관동 학살은 그 35년이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한국전쟁과 재미한인의 지정학적 위치
관동 대지진 22년 후, 미국은 1949년 국방부 창설과 함께 냉전 체제로 들어섰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은 재미한인을 다시 한번 역사의 중심에 세웠다. 관동 학살의 역사를 아는 재미한인들에게 미국의 참전은 단순한 냉전 전략이 아닌, 한반도 운명과 직결된 사건이었다.
재미교포가 기억해야 할 이유
2026년 9월 1일 오늘, 관동 학살 103주년이다.
- 미국 내 한인 커뮤니티 단체들은 추모 행사, 강연, 전시를 통해 이 역사를 알리고 있다
- 한국계 입양인 시민권 문제처럼, 한인 디아스포라의 법적·사회적 취약성은 역사적 맥락 없이는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다
- 반아시아 혐오 범죄가 이어지는 현재(2021~2026년 AAPI Stop Hate 보고서 기준)에서, 1923년의 역사는 과거가 아닌 현재와 연결된 이야기다
기억하는 것이 저항이다
역사를 기억하는 커뮤니티는 반복을 막을 수 있다. 관동 학살은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다 — 사과 없이, 공식 기록 없이, 교과서에서 지워지면서.
💬 이 역사에 대해 얼만큼 알고 계셨나요?
관동 대지진과 조선인 학살을 처음 알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미국에서 이 역사를 어떻게 접하고 기억하는지, 한인 커뮤니티에서 어떤 추모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지 댓글로 나눠 주세요. 한인학교, 커뮤니티 센터에서 관련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면 공유해 주시면 감사합니다.
면책 공지: 이 글은 역사 교육 목적으로 작성됐습니다. 희생자 수 등 일부 수치는 역사 자료마다 차이가 있으며, 가능한 한 복수의 학술·공식 자료를 참조해 범위로 제시했습니다. 추가 연구와 1차 자료 검토를 권장합니다.
-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외교 전문: archives.gov
- 미국 지질조사국(USGS) 관동 지진 기록: earthquake.usgs.gov
- 강덕상, 《학살의 기억, 관동대진재》(역사비평사, 2005)
- 일본 관동대진재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자료집 (2023)
- 재미한인역사학회(Korean American Historical Society): kahs.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