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9, 2026

미 최초 한국계 퍼스트 레이디, “더 이상 침묵하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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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최초 한국계 퍼스트 레이디, “더 이상 침묵하지 않을 것”

Yumi Hogan - Wikipedia

미국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범죄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매릴랜드 호건 주지사의 아내인 유미 호건여사가 아시아 혐오범죄에 대한 메세지를 CNN에 기고했다. 호건 여사는 41년을 아메리칸 드림을 추구하면서 미국에서 살아왔다는 말과 함께, 20년동안 하루에 14시간에서 16시간씩 여러가지 일을 하면서 세 딸을 싱글맘으로 키워냈다고 말했다.

그 모든 시간들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제공해 준 수많은 기회들중 한 부분이었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CNN에 기고된 유미 호건 여사의 기고문의 번역본으로 의역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순전한 본문을 원하는 분들은 이 페이지 맨 하단에 있는 링크를 클릭하여 CNN의 원문을 확인해 볼것을 추천드린다.

호건 여사 본인의 미국에서의 삶

나는 한국의 작은 마을에 있는 닭 농장에서 8명의 아이들 중 막내로 자랐고,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9년 만에 태어났다. 그 당시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처절하리 만큼 가난했다. 우리 가족은 열심히 일했고, 절대 게을러지지 않도록 근면함을 배웠다. 당시 그 농장에서 팔다 남은 달걀과 깨진 달걀은 나의 간식이었으며, 나는 버스가 없어서 매일 2마일이나 되는 거리의 집과 학교를 걸어 다녔다.

내 나이 스무 살이 되던해 미국에 도착했을 때, 이미 나는 “열심히 일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겸손하고 단호했고, 그렇게 가르침을 받았다. 하지만 나는 영어를 잘 하지 못했고, 문화적으로 전혀 다른 세계에 있었기 때문에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게다가, 세 딸을 둔 미혼모로서, 내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할 시간이 없었다. 딸들을 학교에 보내고, 청구서를 내는 것등의 일들을 매일 반복했기 때문에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냈다.

당시 미국에서의 내 삶은 아메리칸 드림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보였다. 딸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조용히 눈물을 닦곤 했다. 나는 고향에서 지냈던 모든 것들이 그리워졌다. 하지만 난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우리 가족을 항상 먼저 생각했다. 나는 딸들에게 더 나은 삶과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모든 것을 했다. 큰딸 두 명이 크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나를 많이 도와줬다. 내 딸들은 열심히 일하고 공부했다.

그것이 내가 힘든 시간을 겪은 이유였다. 일단 내 딸들은 그들의 꿈이 실현되자 나에게 “이제 엄마 차례야. 우릴 위해 모든 걸 희생했잖아! 이제 엄마 자신의 열정과 꿈을 위해 도전해 보세요.”라고 말했다. 내 딸들은 엄마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의 아메리칸 드림은 완성될 수 없다고 말했다. 남편과 결혼한 후, 그도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고, 그는 나에게 영감을 제공해 주었다.

마침내, 나는 내 자신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기로 결심했다. 남편과 딸들 덕분에 학교로 돌아가 막내딸과 같은 또래의 학생들과 함께 공부했다. 나는 메릴랜드 예술대학(Maryland Institute College of Art – MICA)에서 학위를 마치고 미술 석사 학위를 받았다. 몇 년이 지난 후, 나의 꿈이 실현되었다. 내가 지난 10년 동안 공부해온 MICA에서 가르칠 수 있게 된 것이다.

호건 여사가 바라본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삶

여기까지가 나에 관한 이야기이며, 미국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많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다. 우리는 종종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면서 열심히 일하고, 지역사회에 봉사하고, 사업을 시작하며, 이곳에서 가족들을 돌보며 살아왔다. 그 결과, 우리는 이 나라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들이 되었고, 우리는 미국을 건설하는데 기여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여전히 인종차별에 직면해 있다.

많은 아시아계 미국인들과 대부분의 1세대 이민자들은 적어도 두 세 번은 인종차별적인 경험을 했을 것이다. 통상적으로 아시아인들은 증오범죄 사건이 발생했을 때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들의 창문은 나쁜 사람들에 의해 깨지기도 하고, 아시안이라는 이유로 직장에서 승진이 보류되는 경우도 있다. 그들은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서, 그들의 아이들은 괴롭힘을 당했고 아시아 음식 도시락 때문에 “냄새가 난다”는 비아냥을 견뎌야만 했고, 눈짓으로 모욕당하기도 했다.

우리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자랑스러운 인종이다.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기 위해 더 열심히 일했다. 우리는 바로 눈앞의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생계를 꾸려가고, 가족을 먹여 살리고, 아이들을 교육하는 방법을 계속 찾았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는 코로나19 대유행과 씨름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 아시아인들에게 상처가 되는 말들을 쏟아내면서 잔인한 폭력행위로 그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아시아 이민자로서의 당당함 유지하기

이민 1세대로서 인종차별을 당하고 있는 모든 희생자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오늘날, 우리의 조부모님, 부모님, 딸, 아들, 자매, 형제, 그리고 친구들은 두려움 속에서 살도록 강요 받는다. 하지만 이 나라의 자랑스러운 시민으로서, 우리는 어떤 것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제 목소리를 높이고 과감하게 행동할 때가 왔다.

지난 주, 나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남편과 동료 지역사회 지도자들과 나란히 섰다. 결국, 우리 모두는 어떤 면에서는 이 땅에 이민을 온 사람들이다. 아무도 “돌아가라”는 말을 할 수도 없고 들을 필요도 없다. 이곳은 엄연한 우리의 터전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다.

아시아인들에 대한 혐오범죄 방지를 위해 할 일

우리는 워싱턴 DC의 지도자들에게 메릴랜드에서 증오범죄를 개선하고 확대하는 법을 통과시킨 것 같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남편은 2019년 법집행기관이 정보를 수집, 분석하고 보고해야 하는 증오범죄의 범주를 확대하는 법안과 증오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한 새로운 처벌에 서명했다. 내 남편은 또한 아시아 기업과 지역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순찰을 강화하도록 주 사법 당국자들에게 지시했으며 모든 주 정부 차원의 증오범죄를 강력하게 조사할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아무리 제도와 법이 잘 뒤받침한다고 하더라도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명백하게 그리고 암묵적으로 차별을 받을 수 있다. “어디서 왔냐?”라고 묻는 사람들은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어볼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선입견을 가진 악한 마음이 바탕에 깔려 있을 수 있으며, 우리가 미국인이 아니라는 전제가 깔려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미국인들로써 다른 사람으로부터 어디서 왔는지 질문 받을 필요없이 미국인으로 인정돼야 하며, 미국은 인종적인 면에서 한 단계 진보해야 한다.

이 나라는 다양성 때문에 세계 최강이 되었으며, 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그 다양성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고, 우리 사이의 차이를 포용하고, 이해하고, 즐기는 것을 기반으로 한다. 나의 아시아계 미국인 친구들은 아시아인들에 대한 공격 횟수가 증가하고 있는 것에 대해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이 무의미한 폭력 앞에서, 나는 새로운 힘과 결단력 그리고 회복을 보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복수심으로 대응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우리는 서로를 더 많이 사랑하고, 서로를 더 많이 칭찬하면서, 함께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아시아인들에 대한 혐오범죄는 미국 지도자들의 압도적인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며, 그 관심과 지지는 우리의 자녀와 손자들을 보호할 것이며,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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